[과학TALK] 뇌 일부를 전자 뇌가 대체하는 ‘사이보그’ 나올까...치매치료부터 정신 영역 확장까지
김민수 기자
입력 : 2017.03.18 07:00
누군가는 잊고 싶은 기억이 있기 마련이고 또 누군가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싶어한다. 전자는 전쟁이나 고문, 자연재해, 심각한 사고 등을 경험한 뒤 그 경험을 다시 떠올리며 고통을 느끼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는 이들일 것이다. 후자는 집주소를 잊어버리거나 가족과의 즐거운 기억마저 잊어버리는 치매 환자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수는 7240명에 달한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3.6%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15년 기준 국내 치매 환자수도 약 64만 명으로 집계됐으며 고령화 추세에 따라 2025년에는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뇌 과학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PTSD·치매 환자를 돕는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 목적은 약물을 개발해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을 조작하고 기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이크로칩을 뇌에 삽입하고 전기 자극으로 뇌 기능을 컨트롤하려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연구다. 과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뇌 자극, 보조 인공 뇌, 뇌의 일부를 전자 뇌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뇌주간(13~19일)을 맞아 뇌과학 연구 동향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뇌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세계 각국에서 세계뇌주간 행사 동시에 열리며 한국에서는 한국뇌연구협회와 한국뇌연구원 주최로 전국 14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 마이크로칩 뇌에 삽입해 마비 환자 촉감 되찾고 기억도 조작
[[과학TALK] 뇌 일부를 전자 뇌가 대체하는 ‘사이보그’ 나올까...치매치료부터 정신 영역 확장까지]
뇌-기계 인터페이스 연구는 사지가 마비된 장애인이 촉감을 느끼거나 움직이도록 하는 연구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2016년 미국 피츠버그대 로버트 곤트 교수 연구진이 교통사고로 팔다리가 마비된 환자의 뇌를 전극으로 자극해 로봇 손의 촉감을 인식하는 실험에 성공한 게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촉감을 담당하는 마비 환자 뇌의 부위에 미세한 전극 2개를 넣었다. 환자 옆에는 팔과 손 형태의 로봇을 두고 로봇의 손가락에는 압력 센서를 달았다. 로봇 손가락 압력 센서로 감지하는 변화를 전기신호로 바꿔 환자의 뇌에 이식한 전극에 전달했다. 마비 환자는 로봇 팔이 느끼는 촉감을 그대로 느꼈다.
호주 멜버른대 연구진도 뇌 주변 혈관에 임플란트 방식의 이식물을 삽입해 뇌의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꿔 인공 팔이나 휠체어 등에 전달,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실험을 올해 진행할 계획이다.
연구진은 ‘스텐트로드’라고 이름 붙인 작은 전극을 만들어 뇌의 뉴런에서 나오는 신호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스텐트로드는 두개골을 절개하는 수술없이 환자의 목에 있는 정맥에 삽입해 뇌 근처 혈관에 자리잡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호주 멜버른대 연구진이 목에 있는 정맥 혈관을 통해 뇌에 주입하는 ‘스텐트로드’/멜버른대 제공]
▲ 호주 멜버른대 연구진이 목에 있는 정맥 혈관을 통해 뇌에 주입하는 ‘스텐트로드’/멜버른대 제공
이같은 뇌-기계 인터페이스 연구는 갈수록 발전해 기억을 한 생물체에서 다른 생물체로 전송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미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연구진은 2014년에는 쥐가 학습한 기억을 다른 쥐에 전달하는 데도 성공했다. 먼저 실험 쥐 한마리의 뇌에 마이크로칩을 넣은 뒤 2개의 레버가 있는 공간에 뒀다. 2개 중 1개의 레버를 건드리면 쥐가 좋아하는 먹이가 나오도록 했다.
실험쥐는 한참 동안 탐색을 한 뒤 먹이가 나오는 레버를 기억하고 반복해서 건드리는 행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측정된 전기신호 데이터를 삽입한 마이크로칩에 담은 뒤, 이 마이크로칩을 빼내 다른 쥐의 해마에 집어넣었다.
이 두 번째 쥐는 탐색 과정 없이 바로 먹이가 나오는 레버를 찾아갔다. 한 쪽의 기억을 전기신호로 저장해 다른 쪽에 전달한 것이다. 연구진은 작년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같은 실험에 실패했지만 연구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연구진은 2012년 뇌의 해마 기능이 망가져 장기 기억을 하지 못하는 쥐가 장기 기억을 회복하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장기기억에 관여하는 해마의 특정 영역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해 해마로 들어오는 장기기억 신호를 조절한 것이다.
임창환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는 “마이크로칩을 뇌에 삽입해서 기억을 조절하는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기억뿐만 아니라 인지 능력, 계산 능력 등을 높이기 위한 동물실험도 이미 진행되고 있어 뇌-기계 인터페이스 연구가 마비 환자를 움직이게 하는 물리적·기계적 영역을 뛰어넘어 뇌의 근본 기능인 정신적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고 말했다.
◆ 뇌 일부를 전자 뇌가 대체하는 ‘사이보그’ 나올까
뇌-기계 인터페이스 연구는 마이크로칩을 이용한 뇌 자극 수준에서 뇌 기능을 보조하는 보조 인공 뇌, 뇌의 일부를 ‘전자 뇌’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특히 뇌에 삽입하는 마이크로칩이 인공지능(AI) 능력까지 겸비하게 된다면 뇌-인공지능 인터페이스로 진화하며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닌 이른바 ‘사이보그’까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프랑스 그레노블에 위치한 바이오메디컬 연구기관인 ‘클리나텍(Clinatec)’ 연구진은 ‘스컬 일렉트로드(Skull Electrode)’라고 이름붙인 전기 장치를 개발하고 작년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프랑스 연구진이 개발한 스컬 일렉트로드./클리나텍 제공]
▲ 프랑스 연구진이 개발한 스컬 일렉트로드./클리나텍 제공
스컬 일렉트로드는 뇌의 신호를 읽거나 뇌에 전기신호를 가하는 장치로 두개골 일부를 잘라낸 후 원하는 뇌의 부위에 붙일 수 있다. 생체에 적합한 소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두개골처럼 뇌를 보호하는 동시에 원하는 대로 뇌의 전기신호를 조작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여러 개의 스컬 일렉트로드를 장착할 수도 있어 뇌의 일부를 전자 뇌로 대체하는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임창환 교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에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로 발전하고 컴퓨터가 인공지능 능력을 갖게 되면 뇌-인공지능 인터페이스로 진화할 수 있다”며 “생물학적 뇌와 전자 뇌를 결합한 구조의 기계인간도 10여 년 뒤에는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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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18/2017031800330.html#csidxde2a3283f1677e58f053344e6033e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