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공학 최대 화두는 뇌-인공지능 연결"
기사입력 2017-05-21 11:01 기사원문
지난 3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연계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 뉴럴링크를 설립했다. 지난 4월에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페이스북이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인 테크 거물인 두 사람 모두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BCI)’ 기술에 대한 야망을 내비친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BCI 기술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한국뇌연구협회, 한국계산뇌과학회, 대한뇌파신경생리학회 이사를 역임하고 있는 뇌공학 전문가 임창환 한양대 생체공학과 부교수를 만나 들어보았다.
‘뇌-컴퓨터 연결’ 개념은 44년 전 처음 제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이 개념이 처음 제시된 것은 개인용 컴퓨터(PC)가 나오기도 전인 1973년 일이다.
1973년 자퀴스 비달 미국 UCLA 교수는 식물인간 환자가 어떻게 외부와 의사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뇌파로 뇌의 활동을 읽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논문에 담으며 ‘BCI’라고 칭했다. PC는 자퀴스 비달의 논문이 나온 지 4년 후인 1977년 등장했다. 자퀴스 비달 교수는 이때부터 컴퓨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뇌파를 분석하는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자퀴스 비달 교수가 BCI 연구의 서막을 연지 40년이 흐른 오늘날, BCI 기술 연구는 단순히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 뇌와 인공지능 연결을 꿈꾸고 있다. 임창환 교수는 “뇌와 인공지능을 연결해 자연지능을 높이는 것이 최근 뇌공학의 최대 화두”라고 말했다.
임창환 교수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자연지능을 증강할 수 있게 되면 새로운 틈새 같은 것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인공지능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작업을 수행하고, 자연지능은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보다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잘할 수 있게 되는게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이 찾을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바이오닉맨>에서 “자연 뇌와 연결한 보조 인공 뇌는 수학 문제를 풀 때 (논리적인 추론은 자연 뇌가 하지만) 수치적인 계산을 도맡아서 하거나 유한한 인간 뇌의 기억 용량을 보조하는 하드디스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임창환 교수는 “뇌공학과 인공 뇌 연구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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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가 뉴럴링크를 설립한 것도 뇌공학에서 인공지능과 인간 공존을 위한 길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가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짙은 우려가 깔려 있다. 일론 머스크는 ‘코드 컨퍼런스 2016’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똑똑해지면,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판단을 결정하게 되고 인간은 인공지능이 시키는 대로 하는 애완동물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이런 미래를 막기 위해 초소형 인공지능 기기인 ‘뉴럴 레이스’를 두뇌에 삽입해 두뇌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럴링크는 일론 머스크가 지난해 말했던 뉴럴 레이스를 현실화하려는 회사다.
임창환 교수는 이에 대해 “뉴럴 레이스는 어떻게 하면 최소 침습적으로 즉, 두개골을 여는 부위를 최소화하며 뇌에서 나오는 신호를 읽고 뇌에 자극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기술”이라며 “뉴럴 레이스를 작게 만들면 두개골에 넣을 수도 있고 혹은 바깥에 차고 다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환 교수는 뇌 기능 증강을 위한 뉴럴 레이스의 구현이 한참 뒤 미래의 일일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아무리 뉴럴 레이스를 사용한다고 해도 수술이 필요하다”라며 “몸속에 인공물을 집어넣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가진다"라고 말했다. 이어 “마이너스(-)를 제로(0)로 만들기 위한 질환 치료 목적이 아니라 제로에서 인간의 본래 능력을 증강하는 플러스(+)로 가기 위해 과연 사람들이 수술을 감수할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짚었다. 그는 “뉴럴링크가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 회사가 가장 먼저 상업화에 나설만한 것은 인지기능 향상 등 뇌를 자극해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라고 덧붙였다.
뇌 질환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뇌공학
“뇌공학은 기본적으로 뇌 질환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내가 뇌공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창환 교수에게 뇌공학의 매력을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그는 “‘공학한다’라는 건 인위적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공학의 대상은 로봇이나 컴퓨터였다. 로봇을 대상으로 한 게 로봇공학이고 컴퓨터를 대상으로 한 게 컴퓨터 엔지니어링, 컴퓨터 공학이다. (뇌공학이 속하는) 생체공학은 공학의 대상이 인간이다”라며 “제품이나 반도체를 만들어 인간이 보다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것에도 보람이 있겠지만, 인간의 건강과 나아가 생명을 다루는 뇌공학을 하는 것은 매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임창환 교수는 대부분의 뇌 질환이 왜 생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뇌공학을 알기 어려운 뇌 질환들을 더 잘 진단하고 나아가 정복하기 위한 여정에 비유했다. 또 “우리가 만든 기술로 인해 장애를 가진 사람이 건강을 찾아 더욱 행복한 삶을 누리고 궁극적으로는 더 오래 살 수 있게 하는 게 뇌공학”이라고 말했다.
뇌공학 이끄는 서구 사회, 한국은 후발주자
여전히 미지의 세계인 뇌를 연구하기 위한 서구 사회의 투자는 가열차다. 유럽연합은 2012년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라는 뇌 연구 프로젝트에 10년간 10억유로(약 1조7천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013년 4월 미국에서는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연구 프로젝트인 '브레인 이니셔티브’가 출범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 프로젝트에 10년간 3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5월 발표한 ‘뇌과학 발전전략’ 보고서에서 2014년 기준 국내의 뇌과학 기술이 선진국 대비 72%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국내 연구자원은 일정수준 확보됐으나, 선진국 대비 절대적인 연구자원 규모의 열세 극복을 위한 통합적 연구자원 활용체계는 미흡하다"라고 짚었다. 같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2023년까지 뇌과학 신흥강국 도약 준비’라는 비전을 밝혔다.
임창환 교수에게 ‘우리나라의 뇌공학 수준’을 묻자 그는 “미국과 단순비교해 16년, 17년 차이가 난다”라고 답했다. 그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뇌) 실험의 전 단계가 보통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다”라며 “미국에서는 이미 1990년 후반에 원숭이 실험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실험을 정부 연구 과제로 삼아 지난해부터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임창환 교수는 “국내에서는 수술을 통한 연구가 거의 안 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뇌 실험으로 단순 비교했을 때 미국보다 16년 뒤처졌다는 설명이다.
임창환 교수는 이어 “뇌파를 이용한 비침습적 연구는 국내에서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라며 “경두개직류자극(tDSC)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도 많이 있다”라고 말했다. 경두개직류자극기는 뇌에 약한 직류 전류를 흘려주는 기계다. 이 기계를 이용하면 인간 두뇌의 기억력이나 계산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 경두개직류자극 연구 역시 시작은 ‘치료’였다. 경두개직류자극은 200년 전 이탈리아의 과학자 조반니 알디니가 개발했는데,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목적이었다.
임창환 교수는 200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경두개직류자극에 대한 공학적 논문을 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책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에서 “첫 논문이 발표된 2008년만 해도 세계적으로 경두개직류자극에 대한 논문이 30-40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연간 400-500편이 나올 만큼 뇌공학의 가장 잘 나가는 분야 중 하나가 됐다”라고 했다. 검색창에 ‘경두개직류자극’을 검색하면 여러 학술자료와 기사가 뜬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말대로 경두개직류자극에 대한 국내 연구가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창환 교수는 경두개직류자극 연구가 활성화된 것을 반기면서도 이 기술이 지능 증폭에 쓰이는 것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뇌공학 기술을 이용한 뇌 기능 증강 연구는 많은 윤리적인 논쟁거리를 낳을 수 있다. 뇌공학 기술은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라고 했다.
한수연 기자(again@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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